2010년 8월 20일 금요일

<그린 존> 이라크전의 거짓을 파헤치는 '제이슨 본'(?)

관람일시 : 8월 13일 금요일 저녁
관람매체 : Blu-Ray

제목 : 그린 존 (Green Zone, 2010)
감독 : 폴 그린그래스 (Paul Greengrass)
출 연 : 맷 데이먼 (Matt Damon), 그렉 키니어 (Greg Kinnear), 브렌던 글리슨 (Brendan Gleeson)

<본 슈프리머시 (The Bourne Supremacy, 2004)>와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2007)>으로 비평과 흥행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많은 팬들도 그러했겠지만 두 당사자들도 둘의 만남을 <본 얼티메이텀>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원작은 3부에서 마무리가 되었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의 4편을 함께 하길 희망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한 <그린 존>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관객들을 만나게 됩니다.

헐리우드에선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소재이지만, 이상하게도 관객들로부터는 끊임없이 외면을 받게 되는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하여, 대량살상무기 수색과 관련한 의혹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 불과 며칠 만에 이라크를 접수한 미군은, 출처가 밝혀지지 않는 정보원으로부터 취득한 정보를 이용하여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데 전념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보원이 지목한 장소들은 하나같이 대량살상무기와는 거리가 먼 장소들로 밝혀지게 되고, 이에 의구심을 품은 수색팀의 팀장이 결국 거대한 음모를 밝혀 내게 된다는 것이 큰 줄거리입니다.

폴 그린그래스는 <블러디 선데이 (Bloody Sunday, 2002)> 이후 핸드-헬드 (hand-held
) 카메라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장감 넘치는 영상들을 잘 활용하여왔습니다. (사실 <블러디 선데이> 이전 작품들은 아직 감상하지 못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흔들리는 영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특히나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 그의 이러한 장기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사실적인 액션을 연출해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비평적,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911 당시 테러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승객들의 영웅적 행동으로 추락하게 되는 United 93 항공
편의 당시 상황을 재연해 낸 <플라이트 93 (United 93, 2006)> 역시 이러한 촬영 방식이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블러디 선데이>, <플라이트 93>, 그리고 '제이슨 본' 시리즈로 이어지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행보는 어느 한 작품도 관객과 평단을 실망시킴이 없이 큰 성공을 거두고,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린 존>에 대한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기대이하였습니다. '제이슨 본' 시리즈로 쌓은 신뢰 때문인 지 제작사에서는 1억불이라는 거대 예산을 들여 영화를 완성했지만, 현재 미국내 35백만불 + 해외 60백만로 총 95백만불의 극장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쳐 제작사에 큰 손실을 안겨주게 생겼습니다. 평단에서도 '제이슨 본' 시리즈나 <플라이트 93>에 보냈던 열광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로서 이라크전을 소재로 한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공식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 준 셈입니다. 평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가장 대중적인 시상식이라는 미국 아카데미에서도 적극 지원했던 <허트 로커 (Hurt Locker, 2009)> 조차도 손해를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적지근한 흥행에 그치고 말았으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이라크전을 오락으로 즐기기엔 너무 무게감이 큰 탓인 지, 아니면 이라크전을 일으킨 거짓(대량살상무기)에 동조한 원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린 존>은 그렇게 이라크전을 소재로 하여 재미를 보지 못한 그저그런 작품으로 묻혀 버리기엔 너무 안타까운 작품입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침공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이미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영화는 이 밝혀진 거짓을 기반으로 하여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라는 의문을 픽션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 Rajiv Chandrasekaran가 이라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 크게 호평을 받았던 논픽션 "Imperial Life in the Emerald City: Inside Iraq's Green Zone"이 원작입니다. 원작에 대한 평가가 워낙 좋기에 원작에 비교되어 영화가 평가절하되는 느낌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저는 아직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더 후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를 넘긴 정보원이 어떤 인물인지, 이 정보에 미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 개입이 되어 있는 것인지, 또한 이를 은폐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당연히 영화적 재미를 위해 '제이슨 본'을 닮은(?)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쟁터를 재미를 위한 액션의 장으로 활용하기에는 부담이 컸는 지, '제이슨 본' 다운 화끈한 액션은 흔치 않습니다. 이 영화의 액션은 등장인물들에게서 나온다기 보다는 오히려 폴 그린그래스의 장기인 촬영 방식 그 자체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화끈한 액션은 아니지만, 전쟁터의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데 그의 흔들리는 카메라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폴 그린그래스의 영화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작품이지만, 이런 그의 스타일이 마치 종군기자가 촬영한 보도 영상을 보는 듯한 인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이라크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인 지 구분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소재의 무게를 제거하고, 영화 자체만을 놓고 봐서도 이러한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 합니다.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어두운 장면에서의 고감도 노이즈로 깨끗한 화질을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린 존> 블루레이는 좋은 선택이 아닐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감도 노이즈는 영화의 특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기에 개인적으론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이러한 노이즈 낀 화면이라도 저해상도에서 뭉개진 화면으로 보는 것 보다는 고해상도 블루레이에서 영화적 특성을 드러내기엔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됩니다. 흔들리는 화면 못지 않게 영화의 현장감,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로 사운드 디자인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도된 화면이지만 화질이 구리다고 판단하실 분들도 사운드에 대해서는 감탄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이슨 본' 시리즈로 관객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본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좀 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론 상당히 만족한, 폴 그린그래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흥행 실패로 '제이슨 본' 시리즈 4편이 무산되지 않을까 걱정이긴 합니다.

P.S. 갑자기 폴 그린그래스가 흔들리는 카메라 없는 정적인 화면으로도 멋진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지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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