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1일 토요일

<강남몽> 삼풍백화점 붕괴로 뒤돌아 보는 뒤틀린 한국현대사

<강남몽>
작가 : 황석영
출판사 : 창장과비평
초판 1쇄 발행 : 2010년 6월 25일

마지막으로 황석영의 작품을 읽은 게 <심청>이었습니다. 벌써 몇 년 전인 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작년 쯤인 가 그의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정치적 발언으로 저 역시도 조금 거부감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아니, 어떤 분들에겐 변명으로 들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도 했었고, 또 그의 작품이라면 절대 실망을 시키진 않을 거란 기대에 예약주문을 했습니다. (절대, 작가 친필사인본을 준다는 소식에 혹해서 주문한 거는 아닙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소재로 하여, 이에 얽힌 5인의 인생 그리고 이 5인에 얽힌 역사들이 쭉 나열 됩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했던 인물들을 모델로 하여 일부 허구를 보태어 소설로 엮었습니다.

먼 저 백화점 붕괴로 잔해에 깔려 갇혀 버린 박선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녀는 상고출신에 빼어난 미모로 모델 활동을 하다 화류계에서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대성백화점(삼풍백화점의 모델)의 회장인 김진(삼품 백화점 이준 회장의 모델)을 만나 그의 첩이 됩니다. 화류계에서 잘 나갈 당시에는 부동산 업자 심남수와 만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게 되고, 호텔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기 위해 조직 폭력배 홍양태(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의 모델)와 얽히기도 합니다. 백화점 잔해에 갇힌 공간에서는 아동복 코너 여직원인 임정아(삼풍백화점 최후 생존자인 박승현씨의 모델)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박선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그녀와 관계를 맺은 김진, 심남수, 홍양태, 그리고 임정아의 이야기가 차례대로 펼쳐집니다. 실제로 보안사 준위 출신에 중앙정보부에서 김종필 아래서 일했던 이준 회장이 모델이 된 김진의 이야기에서는 일제 말 만주에서부터 시작하여 뒤틀린 한국 현대사가 작가의 필체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마치 한권의 현대사 책을 축약본을 읽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현대사라 하여 지루한 나열이 아니라, 책을 내려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긴박하게 이야기가 풀어집니다.

박 선녀가 사랑했다고 믿고 있는 부동산 업자 심남수의 이야기에서는 그의 스승이랄 수 있는 박기섭과 함께 강남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지금의 강남이 형성되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선녀와는 나이트클럽 동업자로 만나게 되는 홍양태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7~80년대의 대한민국의 대표 조폭 조양은, 김태촌이 각각 홍양태와 강은촌으로 다시 태어나 조폭들간의 피튀기는 전쟁, 정치 권력과의 유착 등이 역시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마지막으로 임정아의 이야기에서는 임정아의 부모 임판수 부부의 고군분투 서울 생존기가 그려집니다. 박선녀, 김진, 홍양태/강은촌, 박기섭등 대부분 몰락으로 나아가지만, 붕괴 현장에 매몰되어 있던 임정아는 매몰 17일만에 최후의 생존자로 구조가 됩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박선녀 및 대성백화점 붕괴와 연결이 되는 구조입니다.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들이 각각 단편으로 읽혀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각각의 단편들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됩니다.흥미진진하게 읽히면서도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들어낸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장면들이 펼쳐질 때는 울분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떨리다가도,임판수 부부를 비롯한 가난한 이들의 생존기, 그리고 임정아의구조 장면에 이르러서는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어본 적도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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