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12 몽키즈> 다시 보는 테리 길리엄의 걸작 SF


<12 몽키즈 (12 Monkeys, 1995)>

감독 : 테리 길리엄
출연 : 브루스 윌리스, 매들린 스토우, 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퍼 플러머, 데이빗 모스, 존 세다

요즘은 그 빛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을 1순위로 꼽습니다. 최근의 <파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 2009)>이나 <그림 형제 (The Brothers Grimm, 2005)>가 좀 아쉬운 부분이 많았긴 했지만,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1975)>, <시간도둑들 (국내 VHS 출시명:4차원의 난쟁이 E.T.) (Time Bandits, 1981)>, <브라질(Brazil, 1985)>, <12 몽키즈 (12 Monkeys, 1995)>,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1998)>등 제가 열광했던 그리고 아직도 가장 사랑하는 영화들의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들을 만들었던 장본인이니까요. 그 중에서도 <12 몽키즈>는 그에 대한 숭배를 확고히 해 준 작품입니다. 
 

<12 몽키즈>는 아마도 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될 것입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브래드 피트라는 두 대스타의 출연도 한 몫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재미”라는 부분이 가장 큰 몫을 담당했을 것입니다. 보통의 오락 영화가 제공해 줄 수 있는 단기적인 그런 재미가 아니라, 다시 보면 볼 수록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오고, 또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또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지속성이 아주 강한 그런 “재미”라고 할까요? 영화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최근의 <인셉션 (Inception, 2010)>이 관객들을 열광케 했던 그런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바이러스를 피해 지하 깊숙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다시 지상으로 보내줄 구세주라도 되는 듯 권력을 쥐고 있는 과학자들은 폭력성향이 강한 죄수 제임스 콜(브루스 윌리스)을 지상으로 보내 바이러스 살포와 관련된 단서들을 수집해 오라고 명령합니다. 지상으로 간 제임스는 “12 몽키즈”라는 조직이 이와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찾아오고, 과학자들은 제임스를 바이러스 살포 직전의 과거로 보내 변이되기 전의 순수한 바이러스 샘플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영화는 이제 과거(혹은 현재)와 미래(혹은 상상)을 오가며 바이러스 살포에 대해 추적해 나가는 제임스의 활약(?)을 그리게 됩니다. 1990년으로 돌아온 제임스는 인류 멸종에 대한 예언으로 정신병 환자로 취급받고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됩니다. 자신을 담당하던 미모의 정신과 의사 캐더린(매들린 스토우)을 납치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12 몽키즈”라는 조직의 실체를 하나 둘 씩 찾아가던 제임스는, 정신 병원에서 만난 과대망상 환자인 제프리 고인스(브래드 피트)가 이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밝혀 냅니다. 또한 제프리의 아버지는 노벨상을 수상한 미생물학자(크리스토퍼 플러머)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주입한 약 때문인지, 이제 제임스 자신도 자신의 예언이 정신병에서 비롯된 망상인 지 현실인 지 분간이 잘 안됩니다. 더구나 지상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무엇보다 캐더린이 존재하는 과거(혹은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자신이 경함한 미래는 망상일 뿐이라고 믿음으로써 이곳에서 머물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자랍니다.

 
이제 관객들은 과연 제임스와 캐더린이 “12 몽키즈”의 계획을 저지시키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지, 또는 이 모든 것이 제임스의 정신병에서 온 상상의 산물인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 둘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행복한 도피 생활을 할 수 있을 지에 초점을 맞추며 영화가 답을 내려주길 기대하게 됩니다.
 

영화의 엔딩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하고, 또한 답을 주지 않기도 합니다. 앞서 진행된 복잡한 이야기들이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받는 엔딩에서 모두 설명이 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질문, 미래의 모습이 제임스의 망상인지 현실인지, 그리고 인류는 구원이 되었는 지에 대한 답은 관객들에 맡깁니다. 하지만 수 많은 단서들을 남겨 놓음으로써 관객들에게 해석의 즐거움을 마음껏 선사하고 있습니다.


아래 회색으로 씌여진 단락들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께는 먼저 영화를 감상해 보시길 강력 추천하며, 아래 회색으로 처리된 부분은 스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과연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인류의 구원에 대한 답은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오갔지만 의외로 명쾌해 보입니다. 결론은 아무도 바이러스의 살포를 막지 않았고, 인류는 이미 벌어진 사건 대로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제임스가 죽고, 바이러스를 살포하게 되는 범인이 탄 비행기의 옆 좌석에는 미래에서 제임스를 과거로 보낸 과학자 처럼 보이는 여성이 타고 있습니다. 그럼 그녀가 바이러스 살포를 막아서 인류를 구원해 주었을 것이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과학자들의 목표는 바이러스 살포를 막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원형 샘플을 가져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샘플을 이용해 지하의 인류를 지상으로 다시 보내줄 수 있으니까요. 제임스를 과거로 보낼 때 그들이 제임스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 지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점은 명확해 보입니다.

 
그럼, 왜 바이러스 살포를 막으려하지 않았을까요? 이미 벌어진 사건은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와 다른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특정 사건을 바꾸면 현재가 바뀌어 버린다는 <빽 투 더 퓨처>나 <터미네이터> 식의 시간 여행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건은 바뀌지 않으며 과거의 사건을 바꾸면 그 시점부터 또 다른 차원이 생긴다는 식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새롭게 생긴 차원은 평행하게 진행되어 서로 다시 만나는 일이 없습니다. 즉, 이 영화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죽음을 목격한 제임스의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는 무한 루프와 같습니다.

그럼 공항에서 제임스에게 총을 쥐어주고 바이러스 살포를 막으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사실 이는 바이러스 살포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제임스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바이러스 살포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좀더 과거로 돌아가 범인을 제지했을 것입니다. 보안이 잘 되어 있고, 또한 제임스를 추격해 온 경찰들로 가득한 공항에서 총을 쥐어줬다는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인 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왜 그를 죽여야 했을까요? 과거에서 머물고 싶어하는 그가 이미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되었던 그를 죽임으로써 무한 반복되는 루프가 완성이 됩니다.
 

2. 미래의 사건들은 모두 제임스의 정신병적 망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쉽지가 않아 보입니다. 감독 자신도 이 부분은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아있길 희망했습니다. 미래의 사건들이 현실이라는 장치가 영화 곳곳에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갖게 해 주지만, 또 모든 것이 망상일 수도 있다는 장치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미치광이 예언자들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바이러스를 살포하게 되는 범인의 옆자리에 앉은 여인은 자신을 보험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제임스의 망상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을 희망했던 감독의 의도적 연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임스의 미래가 현실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주고 더 많은 설명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 벌어진 사건이라는 해석을 선호합니다.


국내에 정식 발매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영화의 성격에 딱 맞는 화질을 보여줍니다. 블루레이 다운 칼 같은 선명함은 없고, 고전 영화들의 여주인공들이 등장할 때의 의도된 뿌연 화면과 유사합니다. 영화의 현실감을 줄이고 정신병 환자의 망상일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함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된 화면으로 생각되어, 영화 성격과 잘 맞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 항상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던 테리 길리엄이었던 만큼, 이러한 화면이 그의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니까요.

<12 몽키즈> 블루레이 메인 메뉴

국내 정발 타이틀의 비싼 가격에 비해 부실한 패키징은 큰 불만이긴 합니다만, Special Feature로 수록된 제작 다큐인 “The Hamster Factor and Other Tales of Twelve Monkeys”는 꼭 감상하셔야 할 영상입니다. 테리 길리엄의 미완의 돈 끼호테 프로젝트의 제작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Lost in La Mancha>를 연출했던 키이쓰 풀턴(Keith Fulton)과 루이 페페(Louis Pepe)가 연출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입니다. 극장개봉과 DVD로 별도 출시되기까지 했던 <Lost in La Mancha>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작품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완성도 높은 제작 다큐입니다. 비록 DVD급 화질이라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한글자막까지 수록하고 있어 <12 몽키즈>나 테리 길리엄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적극 추천해 드리는 다큐입니다.
<12 몽키즈> 블루레이 Extras 메뉴
테리 길리엄과 제작자 찰스 로븐 (Charles Roven)의 음성해설도 참 재미있는데, 한글자막이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음성해설에 대한 영어자막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스페셜 에디션이나, 20주년 기념판, 30주년 기념판 등으로 다시 출시되어야 할 작품이지만, 그 때까지는 다소 부족한 점이 많긴 하나 이 타이틀이 제가 가장 아끼는 블루레이 타이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P.S.
참고로 이 작품의 각본은 크리스 마르께의 <방파제 (La Jetee, 1962)>에 영감을 받아 씌어졌습니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영화가 완성되기 전 <방파제>를 감상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방파제>는 영화라기 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사진집에 가깝습니다. 혹시라도 앞으로 재 출시될 <12 몽키즈>의 블루레이 에는 이 <방파제>까지 수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국내 정식 발매된 블루레이에서 화면캡쳐나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해당저작권자(Universal Studio)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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